작성일 : 10-07-07 13:50
매일신문 칼럼 2010. 7. 6. - [3040 광장] 한 이주 여성 가정의 비극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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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40 광장] 한 이주 여성 가정의 비극 
 
   
 
매년 7월 1일부터 7일까지는 여성 주간으로 정해져 있는데 올해도 제15회 여성 주간을 맞아 여러 가지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7일에는 대구지방변호사회에서 이주 여성과 관련된 법률 세미나를 개최하기로 하여 이주 여성의 인권 증진과 법적 안정에 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한다.
문득 작년에 필자가 박경로 변호사와 함께 무료 변론을 진행하였던 이주 여성에 의한 남편 살해 사건이 떠오른다. 동남아 출신의 그 여성은 동경을 품고 고등학생 정도에 불과한 나이인 17세에 결혼해 사건 당시에는 18세로 임신을 한 상태였다. 이주 여성보다 나이가 곱절은 많은 남편은 평소에는 잘 대해 주었으나 술만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사건 당일에도 만취한 남편은 자신의 아내를 폭행했는데 임신을 했으니 제발 때리지 말라고 애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한국에서 아는 사람이라고는 남편과 그 가족밖에 없었기에 도움을 요청할 곳도, 도망갈 곳도 없었으며 달리 그 상황을 벗어날 방법 또한 없었다. 접견을 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가까운 경찰서나 관공서에라도 피신을 하고 도움을 요청하지 그랬느냐고 했더니 어차피 몇 시간 뒤에는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데 돌아오면 더 많이 맞을 것이 뻔하기에 가지 못했다고 한다. 이 여성이 마지막 수단으로 한 구원 요청은 시어머니에게 전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시어머니는 시간이 늦어 갈 수 없으니 잘못했다고 빌고는 그냥 자라고 이야기하였다. 잠시 후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고자질한 것에 화가 난 남편은 또다시 여성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려 하였고 여성은 흉기로 그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여성은 살인죄로 기소되었고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살인은 용납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그 이주 여성을 두둔할 수만은 없지만 이 사건은 필자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만약 그때 이주 여성이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나 이주여성인권센터 등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을 알고 있어서 그 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면 그러한 불행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또 경찰 등 공공기관에서 가정폭력 사건을 가정 내 단순 사건으로 치부하여 훈방 등으로 가볍게 처리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고 필요시 보호기관에 인계하여 보호하고 가해자에게 그에 합당한 책임을 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시어머니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중재했었더라면, 남편에게 미리 다문화 가정의 특수성과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관용을 교육하거나 부부 갈등을 미연에 해소할 수 있도록 대화와 상담을 주선하는 등 조치를 취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이러한 예방책들이 제대로 작동했더라면 한 사람의 생명을 구했을 수도, 또 한 건의 범죄를 막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고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는 이 사건뿐만 아니라 이주 여성과 관련된 많은 사례를 통해 아직까지는 그들이 이 사회의 온전한 구성원으로 대우받고 있지는 못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전체 결혼 중 국제결혼이 차지하는 비중이 10%를 훌쩍 넘어섰고 국제결혼 이주여성이 17만 명을 넘어선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주 여성의 인권 문제는 이제 더 이상 개인의 일로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사회 문제라 할 것이다. 이들 중 많은 수는 아직도 결혼과정에서 상품화되는 등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거나 배우자 선택권을 박탈당하고 언어 소통의 부재로 각종 무시와 편견 속에서 인권 침해와 차별을 겪고 있다. 이들에 대한 차별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혼혈아라는 이유로 그 자녀들에게까지 대물림되곤 한다.

이제는 이들의 고통을 우리 사회가 함께 보듬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이주 여성의 삶과 가치를 존중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배려하여야 한다. 또한 그들이 이제는 주체가 되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시행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가 그들을 남이 아닌 우리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피부색이 달라도, 출신국이 달라도 그들은 분명 함께 살아가는 우리 이웃이기 때문이다.

박준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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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07월 06일 -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27387&yy=2010 <출처 : 매일신문>